“우리 먹을 씨앗은 돈 주고 안 사…토종 로컬푸드 특화해주길”
군서면 상중리 신대마을 맨 윗집엔 먹을 거라면 씨앗을 받아 쓰는 게 너무나 익숙하다는 2대가 산다. 아버지인 박용호(96)씨는 1951년 7월3일에 입대해 1956년 10월3일에 제대한 참전용사로, 제대 후 군서면에서 맨 처음 캠벨포도 농사를 시작해 일군 세 농민 중 한 사람이다. 포도넝쿨 한 박스 심어보라며 누가 가지고 온 걸, 이젠 아들인 박흥수(65)씨가 3년째 무농약으로 이어가는 중이니 포도부터가 옥천 땅에 적응해 온 토종인 셈이란다.
그뿐 아니라 박용호씨네는 10년 전 별세한 부인 차옥분 여사가 남긴 씨앗, 조점자씨가 월전리에서 채종해 농사 짓는 언니에게서 받은 씨앗 등이 집안 곳곳에 가득하다. 박용호씨는 부인이 떠난 후로 농사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아들 부부에겐 때에 따라 이것 심어라, 저것 심어라 훈수를 둔단다.
집에서 눈에 띈 건 요즘 농사를 잘 짓지 않는 수수였다. 박용호씨는 “마을에 저수지가 생기기 전엔 가물어서 보에다 (오히려)물을 부었어. 하지까정 비가 안 오면 다 모를 못 심구고 수수를 심어놨다 벴지. 그러면 겨울엔 수수대를 엮어 동가리를 만들고, 얼지 않게 고구마 같은 걸 뒀다가 수제비에 넣어 먹었지”라고 말했다. 씨앗에는 늘 이야기가 함께 담겨있다.
31년 복무를 마치고 육군 특공대 상사로 전역한 후 마을 이장, 군서면 영농회장, 군서초 운영위원장까지 맡으며 농사까지 짓는 아들 박흥수씨에게는 여러 토종씨앗 중에서도 하루나(유채)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엄마가 어렸을 때 하루나를 팔러 시장을 많이 다녔다. 하루나 겁나게 많이 먹었다. 다진양념이랑 된장을 같이 해서 무침 해서 먹고, 기름도 짰다. 그거 먹고 컸으니까(그 씨앗이 남다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이야기를 듣는 내내 통역을 하고 보완을 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박씨네 며느리이자 부인인 조점자(66)씨다. 가물 때 잘 된다는 이팥, 얼룩진 모양에 보리를 벤 후에 심는다는 울타리콩, 다른 콩보다도 작아서 반찬으로 많이 해 먹었다는 준열이콩. 팥과 콩 얘기만 해도 토종씨앗을 어디선가 가져오고, 얘기도 풀어놓는 그. 남편이 ‘우리가 먹을 것’이라며 뚝심있게 무농약으로 포도 농사를 짓느라 시아버지와 의견 차이를 보일 때, 포도나무들 아래에 이것저것 밭작물을 심어 먹고 또 씨앗을 받는 이 집 씨갑시가 바로 그다. 몇 번이나 ‘시금치를 씨 받으려고 심어놨더니 두 양반이 (포도농사에 방해가 될까봐)다 없애버려 밑졌다’라고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도 이를 방증한다.
조점자씨에겐 씨앗을 받아서 농사를 짓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스러운 일도 제초제를 안 뿌리는 포도하우스의 잡초를 직접 매고, 밭농사까지 지으려니 허리가 아파 점차 못 할 일이 된단다. 그는 “밥을 해 주려니 다양하게 농사를 짓게 된다. 울타리콩은 밥 먹을 때 넣고, 하루나는 남편이 좋아하니 심고, 부추도 조금씩 한다. 엄마가 농사짓는 걸 보며 자랐고, 포천에 살 때도 아침 5시면 일어나 농사를 지었다”라면서 “씨앗을 남기면 좋은데, 몸이 안 받쳐준다. 그래도 딸들이 와서 심을는가 싶어, 애들이 올 때까진 조금씩 심어서 먹어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남편 박흥수씨도 같은 마음이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올 때까지’ 농사를 잇겠다는 마음 말이다. 조점자씨는 “토종은 정말 진한 맛이 있다. 토종, 유기농 농산물이 중요하단 걸 급식실에서, 학교에서, 또는 먹거리장터 같은 걸 열어서 교육하고, 농가 견학도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부같은 농민들이 토종 농사를 이어가고, 사람들에게도 소개해줄 수 있으려면 제도도 보완이 필요하다. 박흥수씨는 “토종을 수매하거나, 로컬푸드직매장에서 잘 소개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지금은 소량이고, 직매장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돈이 들어가 출하가 어려운데, 순회수집 같은 걸로 이 부분이 해결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제언했다. 과연 다음엔 토종씨앗 속에 상중리 ‘3대’의 토종 농사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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