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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에서 옥천군이장협의회장/ 충청북도 이통장협의회장 까지

군서마을광장·2026. 9. 15.·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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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구두닦이, 밤에는 포장마차

권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가득

이장은 언제나 봉사하는 자리


"낮에는 구두닦이로 또 밤에는 포장마차로 먹고 살기 위해서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정말 인생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군서면이장협의회장이면서 동시에 옥천군이장협의회장까지 된 삶의 동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범 회장(60)은 옥천군이장협의회장 연임으로 당선됐다. 지난 2년 회장직을 잘 수행한 결과 앞으로 3년의 임기도 잘 맡아달라는 옥천군 전체 228명 이장들의 마음이다.


“제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함께 원팀 정신으로 가지고 했던 것을 이장님들이 잘 봐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평과 불만으로 갈라서려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서로 딱 한 발씩만 뒤로 물러서면 해결이 된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또 정말 그렇게 하니 모두 화합을 할 수가 있었지요.”







김 회장의 인생 이야기에서 ‘권투’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옥천중학교 재직시절 권투 선수로 유명했다.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우승’은 그의 몫이었다. 당시 충청남북도에서 그를 이길 선수가 없었다. 그는 서울 체육고등학교로 스카웃 제안 받아 올라갔다. 그의 실력은 변하지 않았다. 승승장구가 딱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라이트플라이급, 플라이급, 팬텁급, 패더급, 라이트급 등 체급이 올라갈 때마다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프로선수로 데뷔, 역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당시 권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급반전’의 상황이 발생했다. 인생의 모든 것 바로, ‘권투’까지 포기하고 고향 옥천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옥천 떠난 지 7년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권투에 대해 ‘정’이 아주 뚝~ 떨어졌지요. 고향에서 무조건 1년을 쉬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요. 그러다가 1년 후 다시 권투를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몸이 근질근질 거렸거든요. 그때 어머니께서 ‘권투하지 말라’고 말리셨습니다. 자식이 맞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육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제가 더 이상 받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잠시 고민 끝에 아예 딱 접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김 회장은 프로권수 선수 시절 큰 상처를 받았다. 모 경기 결과를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편파 판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도 화가 났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경제적인 상황도 이상하리만큼 충족되지 않았다. 소위 프로선수이고 또 연일 시합에서 승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어디선가 큰 구멍이 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가 서울로 올라가면서 주소지를 옮겼다. 따라서 고향 옥천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어떠한 응원이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참기가 힘들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에 불과했다.


“고향 옥천에 내려와서 정말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구두닦이, 포장마차, 잠수질 고기 잡이 등 닥치는 대로 했지요. 당시 제 머리 속에는 무엇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김 회장은 군서면이장협의회장이 되었고, 또 옥천군이장협의회장이 되었다. 면 회장이 되어야만 옥천군 회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동시에 직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장 준비해야 할 일이 이장단 체육대회다. 4-5월에 개최된다. 옥천의 228명의 이장과 그 가족까지 약 1천 명이 모이는 큰 행사다. 또한 12월에 이장 역량 강화 워크숍도 준비해야 한다.


“이장의 역할 중 하나는 민원을 중재하는 것이죠. 요즘 흔한 민원 중 하나는 외지에서 오신 분들, 즉 귀농귀촌하신 분과 기존 주민과의 충돌이에요. 외지에서 오신 분들은 어떠한 문제에서 자기 주장을 정학하게 또 강하게 표출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상대적으로 기존 주민들은 또 ‘우리를 촌놈이라고 무시하는 것이냐’며 반발을 하게 되요. 대체로 충돌은 이렇게 발생하더군요. 한 발씩 양보하면 모두가 좋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었어요.”


김 회장에게 가족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는 잠시 하늘을 한 번 쳐다본 후 곧바로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이었다.


“가족이요? 무엇보다도 먼저 아내에게 미안한 게 많지요. 25살에 만나 고생이라는 고생을 다 했지요. 저의 멘토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용히 제 의견을 따라주는 현모양처 스타일입니다.”


김 회장은 아내 박숙경 씨(61)와 4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면사포를 씌워주지 못했던 게 늘 마음이 아팠었다. 아들 김학승 씨(25)는 운동 소질이 있다. 샌드백 치는 솜씨가 김 회장의 눈에 남다르게 보였다. 분명히 아버지로 인해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제가 아들 운동하는 것을 말렸어요. 물론 권투 선수로써의 끼가 다분히 보였지요. 제가 가르쳐 준 적이 없었는데도 정말 자세가 남달랐어요. 그렇지만 아들이 권투 운동을 하는 것을 막았어요. 아마도 저의 어머니가 저를 말리셨던 것과 같은 의미일 것 같아요. 운동 어느 종목이든 동일할 거예요. 운동이라는 세계에서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거든요. 그리고 저도 아들이 맞는 것, 보는 게 싫어요.”


김 회장은 이장협의회장으로써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군서면 그린벨트 해제 건이다.


“옥천군에 그린벨트가 군서면(약 70%)과 군북면(약 20%)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개발제한 구역이지요. 군서와 군북은 대전에서 옥천으로 오는 길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들이 개발제한 구역 해제가 되면 대전 사람들도 가까워서 주택 등으로 이용할 수가 있고, 또 옥천군에서도 인구 유입은 물론 개발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토지 부분에서만이라도 그린벨트가 해제되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장은 마을을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다. 김 회장은 “이장은 봉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첫째도 끈기, 둘째도 끈기’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군서면이장협의회장, 옥천군이장협의회장 직을 통해 이장으로써의 챔피언을 꿈꾸고 있다.




출처 : 옥천향수신문(http://www.ok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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